“초대형 산불 위협에 행정은 제자리”…낡은 재난 시스템, 이재민 '일상 회복' 가로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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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녹색전환연구소·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영남 초대형 산불 1주년 국회 토론회 개최 및 실태조사
응답자 87% PTSD 위험 이상.. 정보 공백 속 일방향 행정이 심리적·경제적 고통 가중시켜
그린피스-KAIST 공동 연구 공개 ”기온 상승시, 최초 산불 시작일 최대 2개월 조기화, 장마철 억제 효과 소멸로 산불 연중화 진입”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녹색전환연구소,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가 '2025년 초대형 산불 대응 교훈과 개선점'을 주제로 한 국회 토론회를 공동 개최했다. 작년 3월 발생한 영남 초대형 산불 1주년을 맞아 열린 이번 토론회는 국회 산불피해지원대책 특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위성곤·차지호 의원실, 국민의힘 박형수 의원실과 함께 공동 주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재민 300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최종 결과를 바탕으로 현행 재난 대응 체계의 구조적 한계를 짚고, 산불특별법 개정 등 근본적 대책이 논의됐다. 아울러 그린피스는 KAIST와 공동 연구한 기후위기에 따른 한국의 산불 위험도 분석 결과를 함께 공개하며, 제도 개편의 과학적 시급성을 더했다.
발제로 다뤄진 영남 산불 피해주민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 규모에 대한 주민 체감과 행정기관의 평가 사이에 큰 괴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주택(65%)과 가재도구(68%) 등에 80% 이상의 극심한 피해를 체감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행정기관의 피해 규모 산정 및 보상 평가에 대해서 가재도구(80%), 영업장(71%), 주택(67%) 순으로 과소평가되었다고 응답했으며, 복구지원비가 불충분하다는 응답은 89%에 달했다.
조사 결과, 정보 공백이 행정 불신을 낳는 구조적 원인도 확인됐다.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한 주민일수록 피해가 과소평가되었다고 느끼고, 나아가 피해 산정 절차 자체를 불합리하게 인식하는 연쇄 구조가 확인됐다. 특히 보상에 직접 문제를 제기한 응답자(56%)일수록 산정 기준의 합리성을 더 낮게 평가해, 현행 제도가 오히려 행정 불신이 심화되는 상황이 드러났다.
이러한 행정 불신은 피해주민들의 트라우마로 직결됐다. IES-R-K 외상후 스트레스(PTSD) 검사 결과, 응답자의 87%가 ‘위험 이상’에 해당되었고, 고위험군은 67%, 정상 범위에 해당하는 응답자는 8%로 나타났다. 구호지원 배분이 불공정하고, 행정 신뢰도가 낮을수록 PTSD 위험이 악화되는 인과관계가 확인됐다.

경제적 타격과 미래에 대한 비관도 확인됐다. 응답자의 85%가 산불로 인한 소득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했다. 산불 발생 전 대비 소득 회복이 30% 미만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50%에 달했으며, 미래 소득 회복에 대해서도 비관적으로 전망한 응답자가 52%로 절반을 넘었다.
피해 사실 조사가 합리적으로 이뤄졌다고 인식한 응답자일수록 현재 소득 회복 수준이 높고 미래 전망도 낙관적이었던 반면, 불합리하게 이뤄졌다고 인식한 경우 현재와 미래 전망 모두 낮게 나타났다.
실태조사를 공동 수행한 황정화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대다수 주민이 피해 조사가 합리적이지 않았다고 답했고, 보상 산정 근거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며 "행정의 효율성을 이유로 당사자를 배제한 일방향적 복구는 주민들의 심리적 재난을 장기화시키고 있다. 피해 당사자가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고, 복구과정과 재건방향의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참여적 거버넌스가 재난 대응의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서린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활동가는 "수십 년간 일궈온 삶의 자산이 단 몇 분간의 서류 조사로 '잔존 가치 없음' 판정을 받으며 주민들은 깊은 존엄의 훼손을 느끼고 있다"며 "재난 복구는 최소한의 구호가 아니라 삶의 회복이어야 하며, 피해자를 시혜의 대상이 아닌 자기 삶을 재건하는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허승규 경북산불피해주민대책위원회 정책위원은 “일상 회복이란 '살던 곳에서 살고, 일하던 곳에서 일하며, 만나던 사람을 만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며 “재건위원회는 현실적인 지원과 피해 주민 의견 반영을 통해 실질적인 복구와 회복이 가능토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영곤 법무법인 수호 변호사는 “피해 회복을 위한 구체적 배상 방안이 마련되지 않아 실제적 손해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며 “영남 초대형 산불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 명확히 규명되어 고통 받는 시민들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국회 산불피해지원대책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피해 주민들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한 지원이 주거지원과 행정절차 안내, 그리고 소득 회복이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제 산불 피해 지원은 일회성 지원을 넘어 공정한 피해 평가를 바탕으로 주거·생계·심리·공동체 회복까지 아우르는 통합적 지원체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난 대응 시스템 개편의 시급성은 그린피스가 공개한 김형준 카이스트 AI미래학과 교수 메타어스 연구센터 <한국 산불 위험성 변화 연구> 결과를 통해 드러났다.
이번 연구는 기후 모델 기반의 가상지구(MetaEarth) 플랫폼을 활용해 AI 기반 고해상도(2km) 기상 데이터를 얻어, 산업화 이전과 현재, 미래 기온 상승 시나리오(1.5℃, 2℃, 4℃)에 대한 산불 위험도를 분석했다.
산불위험지수(FWI)는 기온(온도), 습도, 바람 3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산출하는데, FWI 20은 산불 발생 위험도가 ‘매우 높음’에서 ‘극심’ 단계로 전환되는 대표적 임계점으로 사용된다.
분석 결과, 최초 산불 발생위험 시점은 산업화 이전 대비 현재 전국 평균 13일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온이 1.5℃ 상승하면 35일, 4.0℃는 59일까지 앞당겨졌다.
산불 위험 기간도 크게 늘어 산업화 이전 연평균 67일이던 기간이 현재 기준 평균 102일(최대 194일)로 늘어났다. 미래 시나리오인 1.5℃ 상승시 평균 163일(최대 282일), 4.0℃ 는 평균 214일(최대 336일)로 사실상 연중 산불 위험 상태에 진입한다.
작년 초대형 산불이 발생한 경북과 울산 지역도 위험 기간이 현재 각각 173일, 185일에서 1.5℃ 상승 시 233일, 275일로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심각한 점은 산불 위험을 낮춰온 여름철 장마의 완화 효과가 소멸될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현재 시나리오까지는 장마철에 산불위험지수(FWI)가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났으나, 기온이 오르면서 FWI 수치 상승과 함께 2.0℃ 시나리오부터 완화 효과가 사실상 소멸될 가능성을 보이며 이는 계절적 완충 구조의 붕괴를 시사했다.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김 교수는 "AI 기반 고해상도 기후변화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기후위기로 인해 여름철 장마의 산불 억제 효과마저 붕괴되었다”고 밝혔다.

이선주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이번 연구는 한반도의 기후가 대규모 산불에 취약한 방향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산불이 더 이상 봄철의 불청객이 아닌 연중 상시화가 예상되는 기후재난인 만큼, 과거에 머물러 있는 현행 방재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민간 공동 조사는 초대형 산불이 단순한 물적 피해를 넘어 피해주민의 삶과 공동체를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피해 주민의 심리가 경제·생계 상황, 행정의 투명성과 공정성, 공동체의 회복 등 복구 과정 전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복구의 모든 과정이 곧 심리적 회복의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피해 현실의 당사자가 산불특별법의 존재와 내용도 모르는 상황에서 법이 실효성을 갖기는 어렵다. 법의 내용적 보완과 함께, 개정 과정에서 피해 주민의 의견을 체계적으로 수렴하는 절차 마련을 정부에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린피스는 영남 초대형 산불 국회토론회와 한국 산불 발생 위험성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정부와 국회에 구체적인 기후재난 대응 정책 개선을 위한 후속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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