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목 차 1부: 한 아이디어의 탄생과 진화 1.1 소유의 여명: 공동체 생활에서 사유지로 1.2 거대한 이념적 분열: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2부: 순수성의 신화 - 현실 세계의 경제 시스템 2.1 현대 경제에 대한 비평 2.2 글로벌 스냅샷: 주요 경제 대국에 대한 정성적 평가 3부: 대한민국에서의 사유재산 3.1 헌법 아래의 재산권 3.2 양날의 검: 재산과 한국의 사회 문제 4부: 부의 더 높은 소명 - 자선과 미래 4.1 기부의 위대함: 인류에 재투자할 자유 4.2 글로벌 임팩트: 사적 자산이 세계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5부. 사유재산을 선행에 쓸 수 있는 자유를 지혜롭게 누리는 방법들 |
5부. 사유재산을 선행에 쓸 수 있는 자유를 지혜롭게 누리는 방법들
사유재산은 절대적이거나 신이 부여한 권리가 아니라, 진보의 강력한 엔진인 동시에 뿌리 깊은 불평등의 원천이 되어 온 역동적인 사회적 구성물이다. 21세기의 중심 과제는 재산권을 둘러싼 사회적 계약을 재협상하는 것이다. 이는 재산권이 제공하는 혁신과 기업 활동에 대한 인센티브는 보존하되, 기후 변화, 전염병, 극심한 불평등과 같은 집단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부의 사회적 의무를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 문명의 미래 생존 가능성은 사유재산을 공익과 선행에 쓸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지혜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사유재산을 공익과 선행에 쓰는 방법들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와 대구의 '키다리 아저씨'
전북 전주시 노송동에서는 2000년부터 매년 연말, 한 익명의 기부자가 수천만 원의 현금이 든 종이상자를 주민센터 근처에 두고 사라진다. '얼굴 없는 천사'로 불리는 그의 선행은 20년 넘게 이어지며 누적 기부액이 10억 원을 넘어섰고, 지역 사회에 깊은 감동을 주어 주민들이 매년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기념하는 축제를 열게 만들었다.
대구에서는 '키다리 아저씨'로 불렸던 박무근 대표가 10년간 매년 1억 원 이상을 익명으로 기부해오다, 더 많은 사람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2020년 자신의 신원을 밝혔다. 그는 "사업에 이용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익명으로 시작했다"고 밝히며, 나눔이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공개를 결심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익명의 기부 문화는 부의 과시를 경계하고, 대가 없는 순수한 나눔을 지향하는 공동체적 정서를 보여준다. 이는 대규모 재단이나 조직을 통하지 않고 개인 대 개인으로 직접적인 온정을 전달하며, 사회적 신뢰와 연대의식을 강화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주민센터에 접수된 기부금은 저소득 취약계층을 돕는데 사용된다.
경주 최부잣집
경주 최부잣집은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원칙을 실천하였다. 경주를 중심으로 반경 약 40km에 달하는 이 광대한 지역은 오늘날의 영천, 울산, 포항 일부를 포함하는 영역이다. 최씨 가문은 이 지역 내 주민 전체를 공동체로 인식하고, 사적인 재산을 활용해 공적인 사회 안전망 역할을 자처했다. 이 덕분에 최씨 가문은 활빈당과 같은 의적들의 습격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카네기
카네기는 "무분별한 자선"이 가난한 이들의 자립 의지를 꺾고 악덕을 조장한다고 믿었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가난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사다리를 놓아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철학은 그의 자선 활동 분야 선택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었다. 카네기는 가난한 이민자 소년 시절, 독학의 기회를 제공했던 도서관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미국과 영국 전역에 2,500개 이상의 공공 도서관을 건립했다. 그는 도서관을 지식과 자기 계발의 기회를 제공하는 가장 효과적인 기관으로 보았다. 교육, 예술, 평화 증진: 카네기 멜런 대학교와 카네기 홀을 설립하여 고등 교육과 문화 예술의 발전을 도모했으며,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을 통해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자 했다.
존 D. 록펠러
존 D. 록펠러는 자선 활동을 개인의 도덕적 실천에서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사회 시스템 개혁으로 전환시킨 인물이다. 록펠러 재단의 활동은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황열병, 구충병 등 전염병 퇴치를 위한 백신 개발과 보건 시스템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으며 , 시카고 대학교 설립 등 교육 분야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의 자선 활동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스탠더드 오일의 재무 이사였던 루이스 세브란스의 기부금으로 제중원이 현대적인 병원으로 거듭났고, 이것이 오늘날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의 기원이 되었다. 록펠러는 공중 보건과 교육이라는 사회 전체의 시스템을 재설계하고자 했다. 그가 창안한 재단 모델은 기부 행위를 기부자 개인의 변덕에서 분리시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영속적이고 전문적인 사업으로 변모시켰다. 이로써 자선 활동은 개인의 도덕적 의무를 넘어, 인류의 복잡한 난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과학적이고 경영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유일한
유일한(柳一韓, 1895-1971) 박사의 자선 철학은 그의 유언장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유한양행 주식 전량을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신탁기금'(현 유한재단)에 기증하도록 했다. 특히 아들에게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거라"고 남긴 유언은, 재산과 경영권의 세습이 당연시되던 당시 한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는 이미 생전에 국내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하고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이양하는 등, 기업을 개인의 소유물이 아닌 사회의 것으로 인식하는 선진적인 철학을 몸소 실천했다. 그의 삶은 기업의 이윤 추구가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신념의 증거였다.
유한재단은 유한 장학금으로 학부생 등록금 전액 지원하고 유일한 장학금으로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하는 등의 자선 활동을 하고 있다,
이종근
종근당 창업주 고촌(高村) 이종근(李鍾根, 1919-1993) 회장은 인재 양성을 통한 사회 환원을 실천했다. 그는 1973년 사재를 출연하여 종근당고촌재단을 설립하고, 기업 이윤을 미래 세대를 위한 장학 사업에 투자하는 길을 열었다. 이는 한국이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시기, 국가 발전에 가장 필요한 인적 자본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였다. 재단은 지난 50년간 약 9,700명의 학생에게 684억 원에 달하는 장학금을 지원하며,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포기하는 인재가 없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을 이어오고 있다.
종근당고촌재단은 생활비 장학금, 등록금 장학금, 무상 기숙사 ‘고촌학사’ 운영, 해외 장학금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이건희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유족들은 2021년, 상속 재산의 상당 부분을 사회에 환원했다. 여기에는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비롯한 국보급 문화재 60건을 포함한 2만 3천여 점의 미술품과, 감염병 및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을 위한 의료 공헌 기금 1조 원이 포함되었다. 이 대규모 기증은 국가의 문화 자산을 단숨에 풍요롭게 만든 '문화적 국력 강화' 행위로 평가받는다. 개인의 컬렉션이 국립 박물관과 미술관의 소장품 수준을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음으로써, 모든 국민이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향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김봉진
'배달의민족' 창업자인 김봉진 의장은 한국 자선 활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는 2021년 한국인 최초로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서약하며, 재산의 절반 이상(약 5,500억 원 이상으로 추정)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이 서약에 따라 ‘우아한 사장님 살핌기금’, ‘우아한 라이더 살핌기금’이 조성되었다.
김 의장은 서약서에서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형편에서 이만큼 이룬 것은 신의 축복과 운이 좋았다는 것으로밖에는 설명하기 어렵다"며 자신의 성공을 사회적 행운으로 돌리고, 교육 불평등 해소와 문화 예술 지원에 기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의 서약은 재벌 2, 3세가 아닌 자수성가한 테크 기업가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자신의 부를 사회와 나누겠다고 공언한 첫 사례로, 한국 사회에 새로운 부자의 역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